오늘 딸아이 졸업식이 있어서 졸업식에 다녀왔다. 44살 늦은 나이에 낳아 이 녀석이 언제 크나 노심초사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훌쩍 커버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중학교에 간다고 하니 참 세월 빠르구나 싶다.
아침부터 하나뿐인 늦둥이 딸 졸업이라고 아빠하고 아들녀석이 모두 하던 일을 올 스톱하고 졸업식에 참여한다고 대기중인 걸 보면 우습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시간을 보니 11시, 핸드폰에 전화가 울려 보니 딸 아이가 왜 빨리 안 오냐고 성화다. 오냐, 지금 가마하고 아빠랑 아들이랑 부랴부랴 학교로 가는데 학교 앞에서 반기는 건 수 많은 꽃 장사들이었다.
북적북적 꽃을 사느라 정신이 없는 교문을 지나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졸업식이니 뭐니 하는 행사장에서 꽃다발을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모두 다 허례허식 같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냥 놔둬도 충분히 예쁜 꽃을 이리저리 포장해서 반짝이까지 뿌려 놓은 걸 보면 생화도 생화 같지 않고, 오히려 그 아름다움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번 들고 사진을 찍으면 집안에 휙 하고 던져 놓기 일쑤라 꽃다발 장사에 흥정으로 정신 없어 뵈는 학교 교문의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꽃다발이 아니라 그 돈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걸 사준다면 더 좋을텐데....하는 생각도 들고.
하기사 교문 앞에서 꽃다발을 사는 사람들도 꼭 그것을 사고 싶어 사는 것만은 아닐테다. 다 사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거려니 하는거지. 다른 아이들은 모두 꽃다발 하나씩 들고 사진 찍는데 내 자식만 휑하니 아무것도 없이 있으면 안쓰러워 보일테지.
그래도 난 그 정신없는 세태가 꼭 우리 어른들의 과욕이고 심술인 것만 같아 얼른 피하고 싶어진다. 사실 졸업식 꽃다발 열풍은 우리 고유의 풍습도 전통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강준만 교수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쓴 책에 이런 글이 있다.
"54년 3월 5일자 <동아일보> 를 보면 중고등학교 졸업식에 갑자기 유행한 '꽃다발' 사태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해방 후 무질서하게 수입된 양풍에 휩쓸려 나타난 꽃다발이 이제는 학원을 뒤덮게 되었다는 걸 개탄한 것이다.
졸업을 축하한다는 꽃다발에는 자연 돈이 뒤따라 허영의 낭비만을 초래하고 있다. 이 꽃다발에 뒤이어 앞으로 점차 박두해오는 각급 학교의 입학시험 지옥이 또한 스스로 거액의 돈을 대기하고 있으니 요즘의 학원은 마치 황금의 난무장인양 가난한 이 나라 학부형들을 울리기만 한다."
그야말로 졸업식 꽃다발 열풍은 불과 50년을 조금 넘긴 인습일 뿐이며 어느샌가 불어 온 유행인 것이다. 그 유행을 우리는 전통으로 만들고 아이들에게 대대로 넘겨주고 있으니......
하기사 연말에 TV를 보다보면 각종 시상식에서 넘실대는 그 엄청난 꽃다발 세례가 얼마나 현란한지 고개를 돌리게 될 정도니 이 정도면 우리의 꽃다발 문화도 제 정신은 아닌 셈이다.
나는 적어도 내 딸만은 그런 '유행' 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하고 싶은 마음에 내 딸 기죽어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교문을 휙 지나가는데 기어코 아들 녀석이 꽃다발 하나를 사 들고 뛰어 들어온다. 요즘 시대는 어쨌든 유행을 쫓아가야 한대나 뭐래나.
으이구, 녀석아 하는 마음으로 졸업식을 지켜보고 꽃다발 들고 사진 찍는 딸 아이의 모습을 보니 우습게도 그런 마음은 누그러지고 "아야~참 이쁘다!" 소리가 먼저 나온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때때로 이렇게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논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유행에 휩쓸리고 마는 못난 엄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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