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생활 이야기



난 요즘 아이들이 보는 tv 프로그램을 별로 안 좋아한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끝나버리는 듯해서 "뭐가 그렇게 재밌니?" 하고 물으면 "웃고 떠드는게 재밌잖아." 하고 배꼽을 잡고 자빠진다. 나는 tv 속 연예인들보다 그걸 보고 거실을 뒹굴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재밌어서 웃는다.



그런데 이런 내가 꼭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무릎팍 도사> 와 <1박 2일> 이다. 어쩌다 보니 아이들 옆에서 보게 된 이 프로그램들은 어느새 내가 <아침마당>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바로 강호동이 출연한다는 것이다.



사실 난 강호동을 19살에 천하의 이만기를 쓰러뜨리던 씨름선수로 기억한다. 그 때 강호동이 이만기를 한 방에 엎어버렸을 때, 나는 얼마나 놀라워하고 기뻐했던가. '저 어린애가 뭘 할까? 이만기를 앞에 두고' 하던 마음까지 한 방에 엎어버린 듯 강호동의 그 현란한 기술에 애 아빠와 박수를 치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강호동이 몇 년만에 이상한 분장을 하고 코미디언으로 전향했을 때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좀 더 멋있는 씨름선수로 남아줄 순 없었나, 좀 더 진중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난 그 순간 그토록 좋아하던 강호동을 싫어하게 됐다.



tv 속에서 거친 사투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이는 내가 아는 강호동은 아니었다. 그 때도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애 아빠는 낄낄거리면서 강호동의 코미디에 즐거워했지만.



그렇게 십수년이 흐르고 여전히 강호동과 딴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내가 강호동을 다시 tv 에서 만났던 건 바로 <무릎팍 도사> 에서였다.


처음엔 '뭐 이런 프로가 다 있나.' 하며 낄낄거리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한심스럽게 생각하던 내가 어느 순간 <무릎팍 도사> 를 보며 울고 웃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때 퍼뜩 강호동이 다시 내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무릎팍 도사> 에서 만나 본 강호동은 예전에 검댕을 칠하고 산 속을 뛰어다니던 강호동과는 또 달랐다. 여전히 그는 얼굴에 분홍칠을 하고 tv 속을 휘젓고 있었지만 그 속에선 오랜 시간동안 방송인으로 살아온 내공과 힘이 느껴졌다.


아무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유머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새삼 강호동에게 느끼다니 나도 참 이상스러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릎팍 도사> 에서 강호동은 시종일관 비판적이고 냉소적이지만 언제나 게스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마치 비수처럼 게스트의 결점을 파고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게스트가 웃을 땐 함께 웃고, 게스트가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준다.



강호동은 예사 젊은 MC들과는 달리 '삶' 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당신의 꿈은 뭔지, 당신의 삶은 어땠는지. 겉으로는 투박해 보이고, 무식해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코미디는 언제나 진지하고 진중했다. 심지어 농담 따먹기 같은 말장난까지도 '삶' 의 일부분이라는 것처럼.



그래서 난 정신 사납게만 느꼈던 강호동의 진행에서 부드럽고 따듯한 삶의 단면을 발견한다.



<무릎팍 도사> 뿐 아니라 <1박 2일> 역시 강호동은 '강호동' 이다. <1박 2일> 은 <무릎팍 도사> 와 달리 정신없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든다. 그런데 '여행' 이라는 소재 때문에 보는 내내 흥겹고 즐겁다.



"맞아, 맞아! 나도 젊었을 땐 저렇게 즐거웠더랬지. 여행 하나만으로도 즐거웠던 젊은 시절이 그립다!" 하면서 말이다.



재밌게도 <1박 2일> 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닌지 우리 또래 사람들을 만나면 "어제 강호동 나오는 그 뭐냐, 여행 떠나는 프로 봤어요?" 하는 말이 꼭 한 번씩 나온다. 그러면서 "어우! 우리도 언제 한 번 걔네들처럼 훌쩍 떠나 봐요!" 하며 즐거워한다. 말 뿐인 상상이지만 생각만해도 즐겁다.



강호동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 나이에 즐거워하고 행복해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일까!
 


삶에 대한 진지하고 따뜻한 태도가,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해 깊음이, 투박하고 거친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섬세함이, 웃음 뒤에 숨겨져 있는 프로로서의 치열함이 '강호동' 이라는 이름에 모두 담겨져 있는 듯, 나는 강호동을 보며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행복해 한다.



저저번 주였나....우연찮게 <백상 예술대상> 에서 강호동이 '대상' 을 차지하는 걸 봤다. 44년만에 첫 예능인의 수상이라는 거창한 수식어 따위와 상관 없이 "대상, 강호동!" 이라고 외쳐지는 순간, 나는 20년 전 강호동이 이만기를 쓰러뜨리던 때처럼 "와!" 하며 진정으로 기뻐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지만 언제나 겸손하고 쑥쓰러워하는 사람,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남을 높이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는 사람, 삶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안겨주는 사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해 작은 웃음까지도 큰 웃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



난 그런 "강호동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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